말릭의 잘린 팔이 환상통 때문에 가끔 엄청나게 쑤시고 아프면 좋겠다. 날이 궂을 때나 몸이 피곤할 때에 특히 아픔. 그럴 때마다 말릭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음. 예전같은 신체 능력 잃어버리고 어쌔신에서 라피크로 직위 바뀐 것도 짜증나는데 있지도 않는 팔이 아프기까지하니 억울해서 미치겠음. 그래서 그런 날이면 알테어를 안 보려고 함. 알테어를 원망해서 그런 건 아님. 지금의 알테어는 예전의 알테어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용서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말릭이니까.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생각이라서 알테어 얼굴을 보면 뱃속이 꽉 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음. 그래서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알테어한테 화풀이할까봐 일부러 보지 않음.
알테어는 처음엔 그냥 말릭이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릭이 안나와도 신경 안썼음. 근데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까 이게 자꾸 반복이 되는 거임.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느 날은 말릭이 막아둔 예루살렘 지부 문을 뚫고 들어감. 내부는 평소와 다르게 불이 다 꺼져있었음. 안쪽에서 비치는 빛으로 어렴풋하게 물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음. 알테어는 텅 빈 지부를 한 번 훑어본 뒤 항상 말릭이 서있던 카운터 뒤로 들어감. 여러 도시의 지부에 가봤지만 안쪽은 처음이라 알테어는 호기심과 신기함이 뒤섞인 기분으로 더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음. 그리고 가장 끝에 있는 방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췄음. 불빛은 거기서 새어나오고 있었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상에 기대 반쯤 누워있는 말릭이 있었음. 말릭은 로브를 벗어서 그런지 꽤 낯설어 보였음. 은은한 불빛과 말릭의 편안한 옷차림 때문에 알테어는 어쩐지 은밀한 곳에 침입한 느낌이 들어 조금 당황했음. 말릭이 이대로 성을 내면서 꺼지라고 할 것도 같았음. 하지만 의외로 말릭은 알테어가 들어온 걸 보고도 별 말 하지 않았음. 그냥 짧은 한숨을 쉬었을 뿐임.
일단 말릭이 쫓아내지 않았으니 알테어는 괜찮은 거라 생각하고 한쪽 구석에 앉음. 그리고 말릭을 다시 관찰함. 어슴푸레한 빛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알테어는 뭐가 그렇게 낯설었는지 알게 됨. 말릭의 잘린 팔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거임. 말릭이 한쪽 팔이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음. 로브를 입고 있어도 왼쪽 소매는 비어 있었으니까. 어쩌다가 소맷자락이 걷히거나 하더라도 그 자리엔 항상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음. 그래서 알테어는 말릭의 왼팔을 볼 때마다 없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잘려나갔다는 걸 실감하지는 못했음. 그런데 이렇게 옷자락도 붕대도 없는 모습을 보니까 확 실감이 나는 거임.
알테어가 다가오니까 말릭이 멈추라고 함. 물론 알테어는 말을 안들음. 알테어는 침상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릭의 팔을 들여다봄. 잘렸다가 아문 살은 울퉁불퉁하게 흉이 져있었고 색이 다른 부분도 있었음. 말릭은 퉁명스럽게 흉하니까 그만 쳐다보라고 함. 하지만 알테어는 오히려 조심스럽게 손을 뻗음. 그러다가 단면에 닿기 직전에 멈추고는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말릭을 올려다봄. 말릭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임. 딱히 숨기던 것도 아니고 만진다고 아픈 것도 아니니 안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음.
알테어의 손은 잠깐 허공을 맴돌다 말릭의 잘린 팔에 안착함. 알테어는 단면을 만지면 어쩐지 말릭이 아파할 거 같아서 아주 살짝만 만져봄. 하지만 말릭이 별 말 없자 조금 더 대담하게 만져봤고 이내 자기 팔인양 맘껏 더듬기 시작함. 그러다 알테어가 어쩐 일로...? 라고 물음. 말릭은 알테어가 뭘 묻는지 이해하고는 아파서 풀어놨다고 대꾸함. 아프다고? 알테어는 반사적으로 손을 떼었음. 그러자 말릭이 그 뜻이 아니라고 코웃음을 치며 핀잔을 줌. 환상통이야. 있지도 않은 왼팔이 아프다니 웃기는 소리지. 말릭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알테어는 죄책감을 느꼈음. 잘 모르지만 뭐라도 좋으니 말릭의 아픔을 덜어주고 싶었던 알테어는 근육통이 생길 때면 스스로 하던 것처럼 말릭의 남은 팔을 주무르기 시작함. 알테어의 손은 굳은살이 박혀 억셌고 손아귀힘도 강했음. 하지만 그것보다도 도움이 된 건 건 체온이었음. 건조하지만 뜨거운 피부가 잘린 팔 밑동을 감싸자 말릭은 자기 몸에서 저절로 긴장이 풀리는 걸 느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선 그 짜증나던 통증까지 잦아들었음. 아파서 며칠 제대로 자지도 못했던 말릭은 금세 잠들어버림. 알테어는 계속 마사지 해주다가 자기도 졸려서는 벽이랑 말릭 틈에 끼어들어서 잠. 대신 한쪽 손으론 말릭의 왼팔을 잡은 걸 유지함.
다음 날 일어난 말릭은 알테어를 차서 침상 바깥으로 떨어뜨림. 그리고 평소로 돌아감. 이후 알테어는 다른 도시의 어쌔신 지부에 들를 때마다 진통 효과 있는 차나 약초 같은 걸 얻어들고 와서 예루살렘 지부에 던져놓음. 물론 말릭은 거의 안씀. 별 소용이 없는 거 아니까. 대신 말릭은 그때를 떠올리면서 뜨겁게 덥힌 천으로 덮거나 자기 손으로 주무름.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알테어가 했을 때만큼 효과가 좋진 않음. 그래도 알테어한테 또 만져달라고 할만큼 뻔뻔하지도 않고 알테어한테 그런 부탁하고 싶지도 않았던 말릭은 조금이나마 안정되는 걸로 만족함. 그러다가 말릭이 자기가 주는 약 안쓴다는 걸 알아챈 알테어가 또 멋대로 침입하는데 말릭이 전에 자기가 해준 것처럼 팔 주무르고 있는 거 보고 깨달음을 얻어서 말릭 손 치워내고 또 주물러줌. 말릭은 말없이 받아들임. 그날 이후로는 날이 유난히 궂은 날이나 일이 많았던 날이면 꼭 알테어가 찾아와서 만져주는 게 일상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둘 다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