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빌의 순수청년 클락이 작은 병원을 연 브루스에게 반해서 들이대는 썰ㅇㅇ
클락은 스몰빌에서 태어나서 스몰빌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시골총각임. 장성한 딸이 있는 스몰빌 사람들 모두가 사윗감으로 찍어놨을 만큼 성실하고 착하고 잘생긴 청년임. 근데 촌티가 나다보니 그 나이대 아가씨들에겐 별로 인기 없음ㅋㅋ 어른들하고 남자한테 인기 많은 타입ㅇㅇ 켄트 부부는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참한 아가씨를 골라오겠거니 해서 닦달하진 않음. 근데 애들 지나가거나 신혼부부가 오거나 하면 은근히 어휴 애들이 참 예쁘네 우리는 언제쯤 널 닮은 손주를 볼까 이런 소리하면서 압박을 줌ㅋㅋㅋ사실 클락도 여자친구를 몇 번 사귀었었음. 근데 나쁜 남자 멋있는 남자 좋아하는 그 나이대 여자애들은 동네 오빠 스타일의 클락이 싫다며 그를 차버렸음. 한 네 번 차인 뒤에는 클락도 반쯤 포기상태였음. 맘에 드는 여자도 없었고ㅇㅇ
스몰빌에 있는 병원은 낡은 병원 하나뿐이었음. 거기 의사는 병원에 붙어있는 날도 거의 없었고 있는 날엔 대부분 취해있었음. 게다가 해주는 치료라고는 외상에는 빨간 약 발라주고 그걸로 안 되는 건 큰 병원으로 보내기였고, 감기 복통 두통 뭐 이런 단순한 진료는 전부 비타민 처방하는 수준이었음. 근데 어느 날부터인가 새 병원이 개업한다는 팻말이 달렸음. 한동안 병원 리모델링에 새로운 장비 설치하고 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스몰빌을 들락날락 거렸음. 사람들은 새 건물이 된 병원을 보며 어떤 의사가 올까, 이번엔 진짜 의사가 올까 궁금해하고 기대했음. 근데 개업 준비가 다 됐는데도 새로운 사람은 이사오지 않았음. 며칠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자 사람들은 병원에 대해 잊기 시작했음.
약 2주 후의 어느 밤이었음. 클락은 친구 피트를 만나러 술집으로 가는 길이었음. 조금 늦어서 원래 길대로 가지 않고 마을 입구를 가로질러서 가고 있었음. 근데 라이트를 켠 차 한대가 입구에 서 있었음. 처은 보는 차였음. 이 시간에 타지인이 오는 일은 거의 없었음. 클락은 혹시라도 무슨 범죄자가 도망쳐온 게 아닐까 싶어서 잔뜩 경계한 채 숨어서 그쪽을 지켜봄. 차에서는 한 남자가 트렁크를 가지고 내림. 남자가 운전석을 향해 뭐라고 말하자 잠시 뒤 차는 왔던 길로 떠났음. 클락은 남자를 잘 살펴봄. 몸에 무기 같은 건 지니지 않은 듯 했음. 그래도 트렁크에 뭐가 들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음. 클락은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감. 허튼 짓을 하려고 하면 농촌일로 다져진 몸으로 제압하면 되니까ㅇㅇ
가까이 가서보니 남자는 예상외로 덩치가 컸음. 쉽게 제압하긴 힘들어 보였음. 클락은 실수했다고 느꼈지만 이미 늦었음. 남자가 클락이 오는 것을 느끼고 돌아봤음. 가로등 빛은 강하지 않았지만 남자의 얼굴을 볼 수는 있을 정도였음. 남자는 잘생겼음. 존나 잘생겼음. 어른들이 말하는 고전미남이 아니라 티비에서 나올 스타일이었음. 새까만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져서 앞머리가 앞으로 흘러내려 있었음. 클락의 심장이 쿵쿵 뛰었음.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음. 클락은 문득 부끄러워졌음. 영화배우인데 내가 못 알아본 거면 어떻게 하지? 자존심 상해 할까? 범죄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저멀리 사라진 후였음. 남자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음. 클락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음. 저... 어떻게...? 남자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클락은 속으로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면 어떻게 해! 차 타고 온 거 봤잖아! 하고 자책하며 재빨리 말했음. 아니, 어디로 가실 건가요? 스몰빌이 작긴 하지만 처음 오시는 분께는 좀 어려워서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남자는 그말에 살짝 턱을 들고 클락을 유심히 바라봤음. 이미 눈앞의 남자가 영화배우라고 결론을 내린 클락은 자신이 남자를 알아보지 못해 기분이 나빠진 거라고 생각함. 남자는 잠시 뒤에 부탁하지, 라고 짧게 말했음. 클락은 재빨리 남자의 손에서 트렁크를 낚아챔.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클락이 선수를 침. 피곤하실 테니 그냥 맡겨주세요. 저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마시고요. 남자는 고개를 가볍게 까닥임. 클락은 트렁크를 끌고 앞장섬.
스몰빌에는 여관이 하나뿐이었음. 클락은 남자가 그리 간다고 생각해서 그쪽으로 향함. 근데 남자가 클락의 생각을 읽은 듯이 말함. 병원으로. 벼... 병원이요?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클락이 한번 더 되물음. 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음. 클락은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다시 시도함. 저... 여기 벙원은 문 닫았는데요...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클락을 응시함. 마을 안쪽이라 가로등뿐만 아니라 근처 집의 불빛이 밝아서, 이번엔 남자의 눈까지 똑똑히 보임. 남자의 눈은 새파랬음. 클락은 넋을 놓고 그 눈을 마주봤음. 클락 본인도 파란 눈이었지만 깊고 진한 심해 빛깔인 그의 눈과는 달리 남자의 눈은 투명하고 차갑게 푸르렀음. 클락은 문득 자신이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음. 다시 말해 상당한 무례를 저지르고 있었음. 클락은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음. 남자는 별말 하지 않음. 클락은 너 오늘 왜 이러냐, 라고 그 자신을 혼내며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감. 병원은 한달 동안 그랬듯이 잠겨 있었음. 하지만 남자의 목적지는 이곳인 듯 했음. 불빛도 없고 열리지도 않는 건물에 남자릉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리는 클락은 우물쭈물 잘 곳 없으면 자기 집에 오라고 말함. 남자는 병원을 보고 있다가 그말에 클락을 바라봄. 잠시 후 남자가 길안내 해주고 가방도 들어준 거 고마웠다고 말하고는 다시 병원 쪽으로 몸을 돌림. 더 할 말 없다는 명백한 태도에 클락은 마지못해 미적미적 돌아감. 내려가다 슬쩍 돌아봤을 때 남자는 사라진 후였음.
집 근처에 와서야 클락은 피트와 술을 마시기로 했었다는 걸 기억해내서 술집으로 달려감. 피트는 잔뜩 기분이 나빠 있었음. 클락은 피트에게 사과의 의미로 술을 사야했음. 그리고는 자기가 만났던 남자 이야기를 해줬음. 피트는 그게 말이 되냐고, 영화배우가 왜 이런 곳에 오냐고 하며 귀신에 홀린 거 아니냐고 함. 클락은 아니라고 궁시렁거리며 술을 마심. 하지만 머리속에선 계속 그 남자를 생각했음. 집에 돌아와서도, 자려고 누워서도, 잠이 드는 순간에도ㅇㅇ
브루스는 고담시 출신. 원래는 회사를 경영해야 했지만 아버지따라서 의사가 되어버림. 참고로 외과전문의. 회사는 믿을만한 이사인 루시우스 폭스에게 맡기고ㅇㅇ 디폴트는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환자에겐 다정함. 한달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도 추스리고 좀 쉬기도 할 겸 알프레드의 조언..이 아니라 강요에 따라 스몰빌로 내려가서 작은 병원을 열기로 함. 근데 브루스는 뼛속까지 도시 도련님이라 시골 존나 싫어함. 모두가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고 소문 존나 빨리 퍼지고 서로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는 분위기를 못 견뎌해서ㅇㅇ 그래서 브루스는 사람 시켜서 스몰빌에 병원 개업 준비 다 해놓은 뒤 조금 시간을 뒀다가 혼자 소리소문 없이 감. 무슨 여행 온 사람마냥 달랑 트렁크 하나 들고 눈에 안 띄게 평범한 차 타고 그것도 밤중에ㅇㅇ 스몰빌에 도착한 브루스는 풍경을 보고 더 우울해함. 농촌의 밤이라는 제목이 붙어서 사진전에 전시되어 있어도 이상치 않을 풍경이었으니까...
다음 날 클락이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보니 조나단 아빠랑 마사 엄마가 한참 이야기를 하다 반겨줌. 무슨 얘기 하고 계셨어요? 하고 물으니 마사 엄마가 신이 나서 아까 들은 이야기를 해줌. 옆집 내쉬가 우유 배달하러 다니다가 봤는데 병원 문이 열려 있었다고. 그 말에 클락은 깜짝 놀람. 진짜요? 마사 엄마는 자기도 구경하러 갈 거라면서 같이 가자고 함. 클락도 설마 어제의 그 남자가...? 라고 생각하며 냉큼 감. 병원은 주택가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근처에 모여 있었어. 의사가 온 거야? 대체 누구래? 아직 못 봤어? 등등 수근수근이수근... 클락은 어젯밤의 남자를 떠올림. 남자가 아무도 없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는데도 의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로 의사같지 않은 사람이었음. 외모 탓일지도 모름. 남자의 얼굴이, 파란 눈이 떠올랐음. 갑자기 얼굴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았음. 마사 엄마가 몇 번을 부른 뒤에야 클락은 정신을 차림. 앞을 보니 꼬마 아서가 누나 엘렌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었음. 마사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감기에 걸린 아서가 누나랑 같이 병원 탐색 임무를 맡은 모양임. 클락과 마사 엄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거기 그대로 서서 아서와 엘렌이 나올 때까지 잡담을 하며 기다림.
한 30분 후 아서와 엘렌이 나옴. 근데 엘렌이 좀 이상함. 엘렌은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달려가서 장난 아니라고 막 비명을 질러댐. 어른들도 몰려감. 엘렌은 가슴에 손을 얹고 몇 번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함. 하도 뜸을 들이자 주위에서 왜? 어땠는데? 라고 물어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꺼낸 첫 마디는 진짜 잘생겼어! 였음. 진짜, 진짜 잘생겼어! 장난 아냐, 너네도 꼭 봐야 돼! 어른들은 그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해보라며 닦달함. 엘렌은 감상을 늘어놓음. 처음에 딱 들어갔는데 얼굴에서 막 빛이 나는 거예요. 너무 눈부셔서 제가 멍하게 서 있으니까 선생님이 직접 일어나서 저 데려다가 의자에 앉혀줬어요. 그러더니 아서가 아파서 왔다니까 아서한테 웃어주면서 어디가 아프니? 라고 물어보는데 목소리도 너무 좋은 거예요! 완전 부드럽고 다정한 거 있죠! 게다가 되게 젊어요. 실제로 봐야 돼요. 예전에 그 돌팔이랑은 비교도 안 돼요. 저 앞으로 간호사 공부해서 선생님 밑에서 일할 거예요! 그러고 나서 엘렌은 친구들을 데리고 사라짐.
클락은 마사 엄마와 집으로 향함. 앞으로는 멀리 갈 필요 없겠네. 근데 그렇게 젊은 사람이 어쩌다 여기로 왔을까? 보통은 큰 도시에서 살텐데. 클락은 적당히 맞장구를 쳐줌. 클락의 머리속은 다른 생각으로 바빴음. 자기가 길안내 해줬을 땐 어떻게 봐도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음. 그럼 다른 사람인가? 근데 엘렌이 잘생겼다는 말을 수십 번을 쏟아낼 정도면 같은 사람일 것 같음. 클락은 침대에 누워서 멍하게 천장을 바라봄.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 남자 생각만 하고 있었음. 처음 사귄 여자친구도 이렇게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ㅇㅇ 그렇게 생각하니 꼭 자기가 그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짐. 어제 처음 본 사람인데. 나이도 모르는데. 이름도 모르는데. 남자인데. 그리 생각하며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킴. 하지만 머리 한구석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음. 그게 뭐 어쨌다고? 첫눈에 반할 수도 있는 거잖아? 클락은 빨개진 얼굴로 침대 위를 뒹굼. 그 와중에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이 떠오름. 어쩌지,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이나 할 대사를 중얼거리면서 클락은 마음을 굳힘. 어차피 나이도 있는 거, 일단 부딪쳐 보기로. 클락은 남자가 일을 마치면 밖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막연히 저녁이 되길 기다림.
근데 안나옴. 분명히 진료실 불이 꺼졌는데 나오지 않음. 클락은 결국 한참 병원 근처를 맴돌다 돌아감.
다음 날 클락은 어떻게 해야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함. 남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무턱대고 쳐들어 갈 수도 없고... 까지 생각한 클락은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음. 병원이니까 아프다고 찾아가면 되잖아! 하지만 곧바로 풀이 죽음. 클락은 여태 아파본 적이 없는 꿩강한 청년이었음. 병원이라곤 어렸을 때 예방주사 맞으러 갔던 적밖에 없음. 심지어 병원에 갈 만큼 다친 적도 없었음. 클락은 마사 엄마에게 은근슬쩍 스치듯 물어봄. 엄마, 혹시 어디 아픈 데 없어요? 없는데, 왜? 너도 병원 가보고 싶은 거니? 그런 거 아니에요! 실패. 조나단 아빠가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는 걸 보니 아빠는 물어볼 것도 없이 실패. 클락은 엄마와 아빠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왔어. 깊은 생각에 빠진 클락에게 꼬마 아서가 다가왔어. 형, 뭐해요? 클락은 아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줬어. 그때 좋은 생각이 났어. 아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물 많이 마시고 야채랑 과일 많이 먹으래요. 그게 다야? 약 같은 건 안 줬어? 사탕 줬어요. 클락은 감기로 결정함. 괜히 이상한 약 받아오긴 싫으니 감기에 걸렸다고 찾아가면 될 듯 했음. 클락은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감.
조심조심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서오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림. 그때 그 목소리가 맞음. 돌아보니 보인 얼굴도 그때 그 남자임. 클락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뜀. 날 알아볼까? 클락은 자리에 앉으면서 재빨리 책상을 살핌. 브루스 웨인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음. 브루스 웨인, 브루스, 브루스... 남자의 이름을 입에서 굴려보던 클락은 이거 작성 좀 해주세요, 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듬.브루스는 그제야 클락의 얼굴을 제대로 봄. 그리고 그때 길안내를 해준 청년이라는 걸 깨닫고 무심코 아... 라고 흘림.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클락은 브루스가 자신을 기억한다는 걸 알고 멋쩍게 아, 안녕하세요... 라고 말함. 브루스는 모르는 척 하고 싶었지만 이미 실수를 해서 별 수 없었음. 그때 고마웠습니다. 클락은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별 것도 아닌데요, 뭐. 라고 대답함. 그리고 잠시 침묵. 브루스는 클락이 작성한 종이를 주길 기다리고 있었고, 클락은 브루스가 대화를 이어나가길 기다리고 있었음. 약 3초가 흐른 후 브루스가 말함. 다 작성하셨으면... 클락은 민망해하며 종이를 건넴.
브루스는 내용을 확인함. 클락 켄트, 33세. ...33살? 그저께 처음 봤을 때 자기보다 어리다고 생각해서 반말했었는데 실제로는 자기보다 한 살이 많았음. 브루스는 힐끗 클락을 쳐다봄. 초조하고 어색한지 끊임없이 바르작대는 모습을 보니 전혀 연상 같지 않았음. 브루스는 뭐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을 내린 후 질문을 함.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클락은 허둥지둥 대답함. 가, 감기가 걸린 것 같아서요. 감기요? 네. 흠... 클락의 얼굴은 빨갰음. 브루스는 열이 나는가 싶어 체온계를 귀에 꽂음. 근데 열은 없음. 갸웃한 브루스는 질문을 던짐. 열은 없네요. 특별히 아픈 곳은 있나요? 클락은 당황함. 어라? 감기는 그냥 감기 아닌가? 코 훌쩍이고 기침하는 게 전부 아니었나...? 어... 콧물이 좀... 클락은 그렇게 말해놓고 파워후회함. 더... 더럽게 콧물이라니... 난 바보야... 하지만 브루스는 무심하게 말함. 목은 괜찮으세요? 클락은 냉큼 목도 좀... 이라고 대담함. 브루스는 흠, 하더니 클락의 목상태를 확인함. 근데 부었을 리가 없지... 브루스는 또 한 번 갸웃함. 하지만 초기라 그런 걸 수도 있었음. 브루스는 클락에게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야채랑 과일 많이 먹고,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처방을 내림. 그걸로 진료는 끝이었는데 클락이 안감. 브루스는 의아해서 클락을 바라봄. 눈이 마주치자 클락이 또 당황함. 끄, 끝난 건가요? 네. 클락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브루스에게 가보겠다며 인사를 함. 서른 셋이나 먹어서 저렇게 어리숙하게 구는 것에 웃음이 난 브루스는 클락을 불러세움. 그리고는 서랍에서 동그란 비타민을 꺼냄. 원래는 애들용인데 브루스는 클락에게 그걸 건네줌. 클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브루스는 선물이라고 대답함. 클락은 귀까지 빨개져서 고맙다고 웅얼거리고 나감.
클락은 집에 돌아와서 브루스가 준 선물을 까서 한 알을 먹었음. 새콤달콤하니 맛있었음. 클락은 비타민을 쪽쪽 빨며 브루스를 떠올림. 처음 받은 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다정하고 부드러웠음. 낮고 달큰한 목소리 때문에 브루스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얼굴이 제멋대로 붉어져서 혼났었음. 게다가 자신에게 선물까지 챙겨줬음. 아무래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았음. 클락은 브루스를 더 알고 싶어짐. 브루스가 마지막에 살짝 웃던 것이 떠오름. 클락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꾹 눌러참음. 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자 클락은 다시 병원 근처로 가봄. 오늘은 브루스가 나올까 싶어서ㅇㅇ 10분 정도가 지나자 진료실 불이 꺼짐. 하지만 오늘도 브루스는 나오지 않음. 허탕을 치고온 클락은 그럼 내일은 어찌 해야할까 머리를 굴림. 감기는 이미 써먹었으니 불가능함. 브루스가 봐도 모를 곳을 말해야 하는데... 클락은 결국 두통으로 결정함.
다음 날 클락은 또 진료실을 찾아감. 브루스는 어서오세요, 라고 인사하려다가 누군지를 확인하고는 아, 켄트 씨. 라고 말함.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사람은 꽤나 많았지만 남들보다 빠른 첫만남도 있었고 어리숙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클락은 똑똑하게 기억났음. 클락은 브루스가 이름을 기억해줘서 기뻐함. 이번엔 진료카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었기에 브루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감. 오늘은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머리가 아파서요. 어디가 어떤 식으로 아프죠? 그게, 음, 뭐라고 해야할지...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두통이 잦은가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아픈가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살짝 아파요.
브루스는 눈앞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봄. 어제 감기에 이어 두통이라.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 남자가 그렇게 흔하고 가벼운 증상 때문에 병원에 왔다는 게 어쩐지 묘했음. 무슨 건강에 강박증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음. 게다가 설명이 굉장히 애매했음. 브루스는 냉소적인 생각들을 흩어버리고 일에 집중함. 어제 감기에 이어 가벼운 두통이라. 감기로 인한 두통일 확률이 높았음. 쓸데없는 약처방은 최대한 삼가는 편이었기에 브루스는 클락에게 이를 설명함. 어제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셨는데, 감기 때문에 머리가 아픈 걸 수도 있어요. 특히 코감기 같은 경우엔 더 그렇죠. 일단은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려보시고요.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심해지거나 감기가 다 나아도 계속 두통이 있으면 다시 오세요. 그렇게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던 브루스는 잠시 멈추고는 감기에 수반될 수 있는 다른 증상들을 설명해줌. 같은 감기로 또 오는 일 없도록ㅇㅇ 그리고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클락에게 말함. 이제 끝났어요.
클락은 얼굴을 붉힘. 그러더니 저... 라고 하며 뭔가 주섬주섬 꺼냄. 클락이 내민 것은 예쁘게 포장된 빵이었음. 저희 엄마가 만든 건데 되게 맛있어요. 어제 비타민도 주셨으니까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어요. 브루스는 받고 싶지 않았음. 동네 사람들과 의사와 환자 이상의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음. 근데 안 받기엔 클락의 표정이 너무나 희망찼음. 새파란 눈이 반짝거리면서 받아주세요! 라고 외치고 있었음. 공 물어와서 꼬리 흔드는 개 같았음.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할 것 같음. 그럼 좋아할 것 같... 브루스는 속으로 고개를 힘껏 젓고 정신을 차림.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빵을 받아듬. 클락이 해맑게 웃으며 안도하는 게 눈에 보임. 브루스는 속으로 웃어버림. 표정 변화가 정말 다이나믹한 데다가 생각하는 게 그대로 보일 정도로 솔직했음. 고담같은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사람이었음. 밝고 순수한 면은 참 맘에 들었음. 근데... 그와 별개로 여기 스몰빌에 사적으로 아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음. 이 작은 마을에서 쓸데없이 인사할 일 없이, 불려다닐 일도 없이 살고 싶었음. 그나마 다행인 건 감기 걸리면 다양한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해줬으니 이제 한 일주일 간은 클락이 감기 때문에 올 일은 없다는 거였음. 클락이 나간 후 브루스는 클락의 차트를 치우며 머리에서 클락을 지움.
클락은 브루스가 빵을 받아줘서 정말 기분이 좋았음. 조금만 더 하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음. 그러려면 분위기를 타고 가야했음. 클락은 내일은 배가 아파서 왔다고 하기로 결심함. 매일 어디가 아프다며 찾아가는 게 굉장히 수상할 거라는 건 생각도 못함ㅇㅇ
진료실에 들어온 것이 클락이라는 걸 깨닫고 브루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음. 평소의 어서오세요, 라는 인사가 없자 클락이 조금 당황함. 저... 선생님? 브루스는 일에 집중하느라 클락이 온 것을 몰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 어서오세요. 라고 말한 뒤 미안하다는 미소를 지음. 클락이 안도하는 게 눈에 보임. 브루스는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라고 말하며 '또'라는 글자에 살짝 강세를 둠. 하지만 클락은 전혀 눈치채지 못함. 클락은 멋쩍게 웃으며 배가 아프다고 말함. 브루스는 그래요. 라고 말하며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물음. 이번에도 클락의 대답은 그냥 전체적으로요.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조금...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로, 애매하기 짝이 없음.
브루스는 이 이상한 환자를 잠시 관찰함. 이틀 전 감기가 걸렸다는 사람치고는 너무 멀쩡함. 열도 없어보이고 목소리도 이상없고 코가 막힌 것 같지도 않음. 어제의 두통도 전혀 없어보임. 그러더니 오늘은 배가 아프다고 함. 브루스는 눈을 가늘게 뜸. 두 번은 우연이라 쳐도, 사흘 연속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은 처음이었음. 누가 보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는 줄 알겠음. 문제는 거짓말을 하면서 병원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거임. 꾀병으로 일하던 곳에서 조퇴하거나 하는 건 이해하지만 병원에 와? 바로 들킬텐데?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자 브루스는 한발 물러남. 정보를 더 모아야했음. 클락 켄트가 왜 꾀병을 부리는 건지 알아야 했음.
근데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음. 브루스가 가벼운 소화제를 건네주고 진료가 끝났다고 말하자 클락이 또 빵을 꺼내든 거ㅇㅇ 브루스가 빤히 바라보자 클락은 엄마가 새로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 입에도 맛있나 궁금해서 가져왔다는 핑계를 댐. 브루스는 받고 싶지 않았음. 하지만 브루스가 전처런 바로 받지 않자 살짝 처지는 어깨와 시무룩해지는 표정 때문에 별 수 없었음. 브루스는 천천히 빵을 받아듬. 클락의 표정은 곧바로 밝아졌음. 그 순간 브루스의 머리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오름. 이 남자가 찾아오는 목적이 나라면? 그거라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가며 병원에 오는 것이 설명되었음. 브루스가 병원 밖으로 안 나가는 바람에 그를 만나는 방법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었음. 마을의 모든 사람이 서로 알고 지내는 시골의 특성이 새로운 주민이 된 브루스에게도 적용되는 듯 했음. 브루스는 가설을 검토하기로 결정함. 이번까지는 모른 척 보내주기로ㅇㅇ 대신 내일도 찾아와서 가짜 증상을 대면 정중하게 오지 말라고 해주기로.
브루스가 눈치챘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클락은 기뻐하며 돌아감. 마사 엄마가 오늘은 또 왜 그렇게 기분이 좋냐고 물어봤지만 클락은 헤헤 웃기만 하곤 일을 하러감. 그날밤에도 클락은 병원 근처를 배회했지만 아무 성과 없었음.
다음 날, 클락은 마사 엄마가 구운 빵을 들고 병원으로 향함. 오늘은 일 끝나고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하기로 마음먹음. 다짜고짜 술 마시자고 하면 이상할테니 핑계도 준비했음. 아는 사람도 없는 타지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테니 사람들 소개시켜주겠다고ㅇㅇ 클락은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진료실로 들어감. 브루스가 그를 보고 미소를 살짝 지어주었음. 클락은 마주 웃으며 의자에 앉음. 브루스가 조금 뜸을 들였다가 물음. 몸은 좀 어때요? 네? 엊그제에는 감기로 오고, 그제에는 두통으로 오고, 어제는 복통으로 왔잖아요. 좀 괜찮아졌나해서요. 아... 제가 좀, 건강해서요. 그, 금새 낫는 체질이에요. 하하. 브루스가 미소를 지었지만 어딘가 날이 서 있었음. 그래서, 오늘은요? 오늘이요? ...아. 오늘은 목이... 목이라고요. 네. ...그렇군요. 그렇게 말한 브루스가 클락을 물끄러미 바라봄. 그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날카로워서 클락은 조금 불편해짐. 드, 들켰나? 하지만 브루스는 담담하게 입을 벌리라고 함. 목 안쪽을 살핀 브루스는 감기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라며 감기 때와 같은 처방을 읊어줌. 진료가 끝난 것 같자 클락은 조심스럽게 빵을 꺼냄. 저... 이거... 브루스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없이 빵을 바라봄. 클락은 갑자기 불안해짐.
클락은 급히 오늘 하려던 말을 꺼내려 했음. 저, 오늘 혹시... 아뇨, 잠깐만요. 브루스가 클락의 말을 막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클락은 그러라고 하고 싶지 않았음. 하지만 브루스는 클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음. 그때 길안내 해주신 것도 고맙고 빵 가져다주시는 것도 고맙습니다. 고맙긴 한데... 이제 오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클락은 그대로 얼어붙음. 브루스는 그 울 것 같은 표정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쉼. 이제 달래야했음. 켄트 씨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귀한 시간까지 버리면서 오실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감기랑 두통, 복통, 그리고 오늘 인후통까지, 전부 거짓말이셨죠? 죄... 죄송합니다... 사과는 안 하셔도 돼요. 환자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직 낯설어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제겐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전 원래 느리게 적응하는 편이거든요. 나중에, 조금 더 적응하게 되면... 브루스는 말끝을 흐림. 클락은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음. 물이 떨어질 것처럼 새빨간 얼굴을 바닥으로 향한 채 클락이 중얼거림. 부담스러워 하시는 줄도 모르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과 함께 클락이 도망치듯 나감.
남은 브루스는 죄책감을 느낌. 자기 때문에 클락처럼 밝고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 게 견디기 힘들었음. 근데 클락이 자꾸 다가와서 별 수 없었음. 브루스는 고개를 저으며 책상을 정리함. 작은 마을이라 오늘 찾아온 환자는 다섯 명이 전부였음. 알프레드가 휴식을 취하라며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알겠음. 정리를 하고 나니 맨 위에 클락의 파일이 놓여 있었음. 브루스는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클락의 이름을 무시하며 진료실 불을 끄고 뒤쪽에 숨겨진 방으로 들어가려 했음. 그때 의자 위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옴. 빵이었음. 클락이 정신없이 나가느라 놓고 간 듯 했음. 브루스의 기분이 더 가라앉음. 갑자기 존나 미안해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진해서 도와줄 만큼 착한 사람이었는데... 한 번 떠올리니 연이어서 클락 켄트가 생각남. 빨개진 얼굴에 도드라졌던 맑고 깊은 심해빛 눈. 끊임없이 허둥대고 안절부절못하던 태도. 브루스는 자신이 클락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 하지만 이런 마을에서 한 사람을 알게 되면 곧 다른 사람을 알게 되고, 조금 뒤면 마을 사람 전체를 알게 되기 때문에 클락이 마음에 들어도 거리를 두고 싶었음. 평온한 생활을 망칠 만큼 클락이 좋은 건 아니니까ㅇㅇ